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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문학기행 ㅡ ➃길상사(백석 시인) 백석과 자야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2022-11-22 07:26:57
카테고리1분경제학.bp > 1분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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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는 천재시인 백석과 기생신분의 연인 김영한 (자 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전해 온다. 백석 과 김영한은 백석이 함흥에 있는 영생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있을 당시 회식자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일본 유학파 엘리트였던 백석과 함흥 권번의 기생이었던 진향 (김영한)은 첫만남 이후 사랑에 빠져 동거에 들어갔다. 이 때 백석이 진향(김영한)에게 이백의 한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딴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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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모님 반대로 다른 여자와 결혼한 백석은 첫날밤 집을 몰래 빠져나와 김영한에게 함께 만주로 가기를 청한 다.하지만 김영한은 혹여 자신이 백석에게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이를 거절했고, 이에 백석은 혼자서 만주로 간다.

그리고 해방과 6.25전쟁으로 백석은 북한으로, 김영한은 남한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남한에 홀로 남게 된 김영한은 당시 정치인, 권세가들만 드나들던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으나 죽는 날까지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다.

김영한은 백석을 잊지 못하고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 일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고, 2억원을 쾌척해 '백석문학상' 을 제정하여 문학도들을 지원하기도 했다.대원각을 시주 할 당시에는 한 기자가 그녀에게 "천억원이나 되는 대원각을 시주하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천억 원이라는 돈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라고 대답할 정도로 끔찍할 만큼 백석을 사랑했다고 한다.

백석이 북한에서 1995년 84세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 해졌고 이에 김영한은 1996년 성북구 7000여평의 대원 각을 법정(法頂) 스님에게 시주했다. 그래서 이 터에 길 상사라는 절이 들어서게 되었다.

1999년 11월14일 김영한은 "나의 유해를 눈 오는 날, 길 상사 경내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84세의 나이로 평생 그리던 백석을 향해 혼백으로 떠났다. 김영한은 하 루 전날 목욕 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 후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고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마치고 유언에 따라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사 경내의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

그리고 김영한의 유골이 뿌려진 길상헌 뒤쪽 작은언덕에는 김영한의 사당과 함께, 그녀의 공덕비와 백석이 자야와의 이루지못한 사랑을 괴로워하는 자신의 처지를 얘기 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비(詩碑)가 함께 세워 졌다. 

공덕비에 김영한의 이름이 길상화로 새겨진 것은 법정스님이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 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생을 그리움으로 살아야 했던 기생 김진향으로,평생을 기다림으로 살아야 했던 연인 자야로, 백석의 시"나와 나 타샤와 흰 당나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여인 나타샤로 살다간 김영한의 슬픈사랑이 저물어가는 길상사의 늦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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