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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은 쾌락과 지배 욕구 행사2020-10-18 12:42:18
카테고리book.bp > 지식.인문학.토크.영혼.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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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김근주 지음NICS 펴냄

ⓒ이지영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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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하느님 혹은 성서는 동성애를 어떻게 보는가? 어쩌면 이 주제는 추석 연휴에 마주하기에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변명을 하자면, 이 주제는 이번 호가 추석 합본호가 될 줄 모르고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어쩌면, 이런 해명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태도일 수도 있겠다. 명절 연휴에 동성애가 화제로 오르면 누가 불편하다는 말인가? 동성애자들은 명절 연휴에 이 글을 보고 불편해할지도 모르는 일부 이성애자들과 달리 1년 365일을 불편하게 지낸다. 퀴어축제 기간은 예외일 것 같지만, 이 기간은 오히려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가 급증하는 때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대표적인 집단 가운데 교회가 있다. 한국 교회만 유독 반대를 넘어 혐오에 이를 만큼 극렬한 양상을 보이는 것 같지만, 어느 나라의 기독교 교단이든 동성애를 배척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나뉜 기독교 교단 사이에 온도차가 있지만, 이들이 함께 사용하는 성서는 동성애에 부정적이다. 이는 기독교만의 특성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공유하는 사항이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동성애가 언급되는 대목은 일곱 군데다. 창세기 19장 1~11절, 사사기 19장, 레위기 18장 22절, 20장 13절, 로마서 1장 26~27절, 고린도전서 6장 9절, 디모데전서 1장 10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사야 1장 10~31절, 예레미아 23장 14절, 에스겔 16장 49~50절, 마태복음 10장 14~15절, 누가복음 10장 10~12절에서 남색(동성 간 성행위)을 가리키는 소도미(sodomy)의 어원을 제공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동성애가 언급되고 있는 문제의 일곱 군데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적었다는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단죄하고 있다. 레위기에서는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고린도전서에서는 “남색하는 자는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는 이런 말씀에 기반하고 있기에 좀처럼 변경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으로 동성애를 둘러싼 신학 논쟁 역시 저 일곱 대목에 대한 해석에 집중되고 있는데, 반대하는 입장과 옹호하는 입장은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


성서 해석을 전공한 신학자 김근주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성경 주해와 해석:동성 성행위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NICS, 2020)에서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0년 전에 작성된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따르는 무리를 지적하면서, 성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할 문서가 아니라 항상 특정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품기 쉬운, ‘신구약 성경은 시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진리를 전한다’는 생각이 ‘해석’이라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낳게 하지만, 이와 같은 진리관은 그리스 철학에서 나온 것일 뿐 성경과는 무관하며, 세대의 흐름에 따라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해석하고 현실화하려는 시도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성서는 읽기 쉬운 현대어로 번역되어 있을 뿐, 수천 년 전 중근동의 관습과 사고방식, 당시의 역사와 과학적 이해, 그리고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역사적 문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서를 읽는 것은, 어느 경우든 문자가 아니라 문맥과 그 속에 든 근원적 메시지를 해석해야 한다. 신명기 22장 28~29절은 이스라엘 남자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강간했을 경우, 그는 그 여자의 부모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아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규정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대 가부장제 사회가 비참한 지경에 빠진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이지, 현대의 기독교인이 저 규정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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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에는 ‘동성애’라는 말이 없었다

〈예수, 성경, 동성애〉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를 쓴 잭 로저스는 미국 장로교회 총회장을 지낸 신학자이면서 미국 장로교회 총회가 2014년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남녀의 결합’에서 ‘두 사람의 결합’으로 변경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는 동성애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이전에는 “반사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했고, 그것이 기독교인이 동성애에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단으로부터 게이와 레즈비언을 교회 직분에 임명하는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써보라는 요청을 받고, 동성애 문제에 자신의 성서 해석 방법을 적용하면서 관점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의 성서 해석 방법은 김근주가 말하는 것과 똑같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고, 그 중심 주제”를 고민하는 것이다. 문자에 매달렸던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노예해방에 반대했고, 여성과 이혼·재혼한 사람의 목사 안수를 금지했다. 1850년 컬럼비아 신학교 학장이자 목사였던 제임스 손웰은 기독교인은 노예제도를 지지하고 무신론자들은 그것에 반대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논쟁의 양편은 그저 폐지론자들과 노예 소유주들이 아니다. 한 편에 무신론자들, 사회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붉은 공화당원들, 급진주의자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질서와 통제된 자유의 친구들이 있다. 한마디로, 세상은 전쟁터다. 기독교와 무신론이 서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인류의 진보가 걸려 있다.” 잭 로저스는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때는 여러 차례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했다”라면서, 동성애 문제에 관해 “교회는 과거의 잘못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윌라드 스와틀리의 〈동성애-성서적 해석과 윤리적 고찰〉(대장간, 2014)은 신자들의 몸인 교회는 인종이나 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를 승인하거나 축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추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동성애는 “서구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유산”이며, 세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제3세계 문화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다고 말한다. 지은이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지만, 이 주장에는 음미해야 할 역설적인 진실이 있다. 김근주는 성서가 금했던 것은 쾌락과 지배 욕구가 행사된 “남자-남자 관계”, 즉 소도미였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동성애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때에는 ‘동성애’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언어가 없으면 현실도 없다. 성경에는 ‘동성애’가 없고 남자-남자 동성 성행위만 있다.” 성서에 기반한 일부 기독교인의 동성애 혐오야말로,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가 아닌가.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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