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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야성의 회복2020-10-28 16:15:26
카테고리김용태의변화편지.bp > 편지
작성자user icon

왠지 ‘꼬마’에게 마음이 끌렸다. 청계산으로 도망쳐서 한때 사람들의 마음을 애끓게는 했지만 그 놈의 야성이 마음에 들어서다. 서울대공원에 그냥 있으면 끼니때마다 영양가있는 음식도 갖다주고, 수의사가 알아서 예방접종도 해줄 테고, 주거환경도 쾌적하게 조성해주는데 굳이 이 추운 겨울날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꼬마’는 다 마다하고 꽁무니를 빼버렸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함께 있는 암컷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그랬다는 설도 있지만 말 못 하는 동물이라 왜 도망쳤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추측만 할뿐이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꼬마’의 야성 본능이 발동한 것만은 분명하다. 야성은 속에서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야성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물원처럼 규격화된 문명의 제도 안에 안주하면서 내가 누군지, 진짜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한 도전없이 세속적 가치관에 속아서 주어진 시간들을 껍데기 삶에 소비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냥하지 못하는 동물원 사자처럼, 사람들이 쳐주는 박수와 던져주는 먹이에 만족하며 쇼를 하는 돌고래처럼 말이다.

야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들은 기업가정신으로 돌아가야 하고, 교육자들은 학생들에게 공부의 야성을 불어넣어줘야 하며, 정치인들은 야심을 야성으로 전환시켜야 하고, 교회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의 야성을 쫓아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야성의 축제다. 시의적절하게 ‘꼬마’가 우리 속의 야성을 일깨워 주었다.

‘꼬마’야, 고맙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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